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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noon Sumi Kang Post-Online.pdf

마치 살덩어리처럼 찐득하고 무겁고 동물적이다. 그러니까 우리 몸의 피부와 뼈 사이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로 이뤄진 그 살(flesh)만큼이나 물질적이고 생리적이며 현실적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러니까 그 감각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하게 강렬하며 자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체제와 전자 데이터 자원만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가? 바로 인터넷 포털, 사회 관계망 서비스, 앱 등 2016년 현재 우리에게 매우 당연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사이버스페이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 1 - - 2 - 현실의 온라인, 포스트 온라인 강수미 (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1) 1. 끈적거리는 사이버스페이스 마치 살덩어리처럼 찐득하고 무겁고 동물적이다. 그러니까 우리 몸의 피부와 뼈 사이에 있 는, 지방과 단백질로 이뤄진 그 살(flesh)만큼이나 물질적이고 생리적이며 현실적이라는 말 이다. 또한 그러니까 그 감각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하게 강렬하며 자극적이라 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체제와 전자 데이터 자원만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가? 바로 인터넷 포털, 사회 관계망 서비스, 앱 등 2016 년 현재 우리에게 매우 당연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사이버스페이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4년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는 용어를 처음 세상에 등장시킨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컴퓨터 기반의 온라인 공간은 디지털 네트워크로 짜 인 단순하고 명료한 표면과 차갑지만 세련된 기학학적 질서의 가상현실세계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생물학적 인간 너머 초인간적인 포스트 휴먼(post-human)의 세계다.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은 질척거리며 자신을 옥죄는 육체의 사슬을 풀어헤치고, 정보 네트워크로 산뜻하 게 연결되는 디지털 매트릭스에 탐닉한다. 거기서는 모호한 감정의 낭비도 없고, 애매한 주 관성의 영향도 없으며, 무익한 물리적 갈등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 맹 목이 없다. 대신 명료한 시각, 스펙터클한 자극, 지적 아름다움이 결코 지루할 틈 없이 찰나 적이고 간명하게 주어진다. 그래서 주인공 케이스는 “육체를 은근히 무시하고 육체란 단지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스스로를 엘리트라 자부한다. 반대로 컴퓨터 매트 릭스에 접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낙원에서 추방당한” 것처럼 결핍에 시달리고 온라인 금단증세에 고통스러워한다.2) 30여 년 전 깁슨이 소설 속에서 그린 디지털 가상공간은 이처럼 탈육체, 초감각, 초정신 의 향유가 가능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그것은 구차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세상 현 실과 극단적으로 대비됐다. 사실 그 시절에 깁슨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 린 온라인 세계의 멋지고 환상적인 측면은 그렇게 우리를 육체의 감옥, 무거운 물질계의 족 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었다. 그럼 지금 여기 우리 일상의 중심부에 들어앉은 그 디지털 세계는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가상적이며, 우리는 해방된 자유를 구가하고 사는가? 우리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매달려 보내는 하루일과의 구체적 내용들을 되짚어볼 때, 그 양상은 과거의 비전과 전혀 다르게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할 것이다. 지금 여기 온라인 현실 은 서두에 썼듯 동물적이다. 해소할 길 없는 분노, 원한, 공포, 좌절의 감정들로 질척거리고 끈적끈적 얽혀있다. 주먹보다 더 심한 정신적 폭력이 난무하고, 금수만도 못한 추태가 아무 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곳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시대가 도래하기 직전 세대가 온라인 공간 을 마치 어떠한 마찰도 없고, 시공간의 장애나 한계도 없으며, 인간적 모순이나 어리석음을 1) An Annual Journal of Visual Culture and Contemporary Art noon, vol. 6. 2016, Gwangju Biennale Foundation, pp. 84-93(Kor)/88-97(Eng). 2) William Gibson, Neuromancer, Ace Books, 1984, p. 6. - 3 - 넘어서는 것으로 구상한 바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말이다. 2. 공적 구조의 구멍 ↔ 사적 구제 효과 갈등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현실에서 벌어진 한 사례를 보자.3) 우선 오프라인 공간이다. 한 남성이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강남의 지하철역 근처에서 낯선 두 남자에게 길을 묻다, 갑작스럽게 그들로부터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한다. 이를 첫 번째 갈등의 발생이라고 치자. 이때 갈등의 성격은 우연성과 사적 관계성을 갖는 다. 당연히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정확한 수사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고자 한다. 하 지만 경찰은 수사 개시 후 50여일이 흐른 뒤 CCTV에 찍힌 가해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 다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않은 채 수사를 종결한다. 이에 피해자와 그 가족은 공권력 앞 에서 울분에 찰 수밖에 없다. 여기서 두 번째 갈등이 점화된다. 이때의 갈등은 사적 주체와 공적 구조 간의 갈등이며, 한쪽이 사적이고 심리적/심정적이며 주관적인 특성을 갖는다면, 다른 한쪽은 공적이고 제도적/형식적이며 기술적인 것이 특성이다. 이후, 상황은 온라인 공간으로 넘어간다. 위 피해자의 가족은 이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세칭 ‘묻지마 폭행’을 당한 일부터 경찰의 한심한 사건 처리까지 고발하는 폭로성 글을 올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동의와 도움을 호소한다. 그 글은 무자비한 폭행으로 심하게 망가진 남자의 얼굴 사진까지 첨부했기에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 대상으로 급부상한다. 포 털에는 가해자 ‘혐의가 있는’ 두 남자를 기정사실화해 단죄하는 댓글들, 경찰의 무능과 무기 력을 비난하는 언급들이 쏟아진다. 동시에 원 글은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온라인 매체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무작위로 퍼져나간다. 즉각 재수사와 가해자의 처벌을 청원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시작되고, 고발 글 또는 거기서 변형을 거듭한 단편들이 포털 게시판/댓글 창이나 개인 블로그, SNS를 넘어 인터넷 언론에 기사화된다. 그리고 일련의 과 정이 다시 주류 언론에 리포팅되면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그러자 경찰은 강력 계 형사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려 사건을 전면 재수사한다고 대외에 공표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른 갈등을 본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정체나 목적 면에서도 전혀 하나로 통 일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가상공간의 불특정 다수 익명과 공권력으로서 법적 ․ 행정적 ․ 사 회적 정체성 및 기능이 엄격히 규정돼 있고 명확히 제도화돼 있는 경찰이라는 공적 장치 (apparatus) 간 갈등이다. 전자는 후자에 개입하고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후자는 규 정된 시스템과 규칙이 있음에도 전자의 개입을 임의적으로 허용하고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전자가 내포한 우발성과 변칙성을 자기 내부에 끌어들이게 된다. 경찰이 재수사를 발표하자 마자 기존의 반응 위에 이제는 경찰의 이중성 및 기회주의적 행태를 비난하는 언론과 네티 즌의 반응까지 얹혀 여론은 더욱 혼종적이고 예측 불가한 양태로 들끓는다. 그 사이 사건 초기부터 이미 개인 신상이 노출된(“털린”) 가해 혐의자들에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목적 없는 저주가 쏟아진다. 그리고 상식적 수준을 넘어선 숫자의 익명 집단은 벌써 부터 합리적 사법 판결을 훨씬 앞질러 인민재판식 단죄를 외치고, 실제로 유무형의 집단행 동(예컨대 혐의자의 페이스북에 몰려가 언어폭력을 가하거나, 집에 찾아가 보복한다고 위협 하거나...)이 폭주한다. 이 대목에서 또 우리는 새로운 갈등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공적 체 제로서 사법의 구조 및 절차, 객관성, 기준, 원칙, 일관성 같은 것들이 지극히 유동적이고 3) 사례로 든 사건은 2016. 1. 15 SBS뉴스 “종결이라더니…'묻지마 폭행' 인터넷서 화제 되자 재수사” 를 참조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362345&plink=ORI&cooper=DAUM - 4 - 즉흥적이며 불안정한 흐름, 반응, 액션, 리액션 같은 것들과 의식/무의식적으로 상호침투하 며 벌이는 갈등이 그것이다. 3. ‘현실/온라인현실’의 선악과 일견 위의 사례는 인터넷이나 온라인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선(善)기능을 하 는지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 포털 게시판에 글을 써서 진실을 알리니 주류 언론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일, 심지어 복지부동의 공권력이 유야무야로 넘기려고 했던 일이 원점에서 제대로 바로잡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기능만이 아니다. 어느 때부턴가 그것들 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온갖 소식들, 정보들, 문서들, 이미지들을 ―그것들이 폐쇄적으로 은 폐돼 있거나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거나 간에, 지엽말단이거나 글로벌하거나 간에, 눈에 확 띄거나 구역질이 날 만큼 지겹거나 간에― 차별 없이 언제 어디서나 손쉽고 값싸게 제공해 주는, 그 자체로 선한 존재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국내외에서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일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발생하고 전개되고 비약 및 확산되다가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틈에 사라져버린다. 말하자면 온라인은 더 이상 오프라인 현실 공간의 보 충대리 공간도, 비현실 또는 환상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사태는 역전돼 인터넷과 소셜 미 디어 같은 온라인이 주류이자 헤드쿼터로서 오프라인 공간을 컨트롤하고, 온라인의 현실이 오프라인을 실제/허구, 선/악, 합리/불합리, 이익/손해, 성공/실패로 결딴내는 데 절대적 영향 력을 행사한다. 여러 컴퓨터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해 최근 미 국립 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연 구4)에 따르면 이런 양상은 지극히 문제적이다. 온라인 공간은 인간의 뇌가 본래 지닌 확증 편향성(brain's natural confirmation bias)을 강화시켜, 기존에 자신이 가진 편견과 반향 하 는 특정 내러티브, 콘텐츠, 판단, 친구, 입장, 기호 등에 더 쉽고 확고하며 단단히 고착되도 록 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위험의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인터넷과 소 셜 미디어의 폭발적 증가 및 확장과 연동해서 그런 위험성은 벌써 완전히 현실이 되었기 때 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세계를 전자 그물망으로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www)은 “긴급하고 큰 사안임에도, 다듬어지지는 않은 사회적 반응들이 터져 나오는 근거 없는 루머와 음모 론”5)의 가장 강력한 “반향실(echo chambers)”이자 급속한 확산회로다. 우리가 상호 교류 및 사회적 관계를 다각화할 수 있다고 믿는 각종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트위터에서 페이스 북, 텀블러,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등)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우리는 넓고 다양한 관계 를 새로 맺고 열린 커뮤니티를 자유롭게 들고 난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애초 자신의 행동 패턴, 관심사, 삶의 경향 등과 유사하거나 연관된 대상에 부지불식간 부착되는 경향이 있어 기성의 것들에 대한 “강화, 확증 편향, 분리,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이다. 역설적으로 상호 배타적이고 상호 편견으로 보호막이 쳐진 그 네트워크에서는 정보의 질이 떨어지고, 근거 없는 루머, 불신, 편집증에 영향 받아 조성된 맹목의 내러티브들이 변칙 생산, 재생산 된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정보는 어느 사이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성장한다. “세계 경제 포 4) Walter Quattrociocchi 외 7명 공저, “The spreading of misinformation onlin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2015(Sep.), pp. 1-6.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6/01/02/1517441113.full.pdf?with-ds=yes 5) 같은 논문, p. 1. - 5 - 럼이 우리 사회의 가장 주요한 위협 중 하나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디지털 오류정보(misinformation)를 지목한 것”6)은 이와 같은 문제점 때문이다. 4. 포스트 온라인의 낙관과 공포 “그 옛날, 호머의 시대에, 올림포스 신들을 위한 구경거리였던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에게 구경의 대상이 되었다.”7) “연기자와 구경꾼으로 인간이 분리된 것은 우리 시대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언덕에서 춤 추는 광기의 육체로부터 어둠 속에서 노려보는 한 쌍의 눈으로 변형되었다.”8) 『가상현실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Virtual Reality)』,『가상현실론(Virtual Realism)』의 저자 마이클 하임은 20세기 후반, 당시 학계는 물론 문화 예술 분야 전반을 휩쓴 연구주제인 ‘가상현실’을 철학적으로 해명해 주목받았다. 그의 논변이 특히 세간의 흥 미를 끌고 연구자들의 참조대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즈음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라 부를만한 사회적 현상들이 본격 전개되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사람들은 그 시대적 배경 및 향후 미래에 대해 무엇이라도 알고 싶어 했다는 점을 들어야 한다. 거기에 하임의 서구 정 신사 전반을 훑는 논지 전개 방식이 한몫했다.9) 하지만 그는 관념적 추론이나 이상적 결론 도출의 덫에 빠지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예술 사례를 들어 논지를 펼치면서, 디지털 테크놀 로지로 변화하는 세계의 부정적 효과를 미적/예술적으로 전환시키고 그렇게 해서 디지털로 분열된 세계를 예술이 재건할 수 있는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던 것이다.10) 이론분야의 한 예로 하임을 소개했지만, 철학부터 기술공학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한 때, 보다 구체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정도까지 사이버스페이스를 긍정 적인 시각으로 보는 데 동의했다. 그 중 특히 가상현실이론에 따라 비물질 차원에서 열리는 디지털 유목의 자유, 육체적 한계를 건너뛴 몰입과 상호작용의 관계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표방하는 시각과 입장이 득세했다. 그리고 사회 전반이 그 같은 성격의 미디어 이론가들, 철학자들, 문화론자들, 나아가 멀티미디어 예술가들이 그려 보이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기술 황홀경적 전망에 뜨겁게 반응했던 것도 사실이다. 완벽히 민주적이고 열린 의사소통이 누구 에게나 언제든 가능할 것이고, 우리의 무거운 몸뚱이는 빛처럼 가벼운 존재 상태의 운동으 로 변형, 변질, 변성돼 디지털 연산의 우주 속을 유영할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 6) Carolyn Gregoire, “Researchers Map How Scientific Misinformation Spreads On The Internet”, Huffpost Science, 2016년 1월 8일자 기사.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misinformation-social-networks_568d7cf5e4b0cad15e6327 9d 7)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Its Reproducibility”, Howard Eiland & Michael W. Jennings (eds.), Edmund Jephcott, Howard Eiland, and Others(trans.), Walter Benjamin Selected Writings vol. 3,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p. 122. 8) Jim Morrison, The Lords and the New Creatures,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69), p. 29를 Michael Heim, Virtual Re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 85에서 재인용. 9) Michael Heim, 여명숙 역,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책세상, 1997 참조. 10) Michael Heim, Virtual Realism, pp. 53-75. - 6 - 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계의 폭주/독재 가능성, 하이테크놀로지와 매스미디어의 통제 하기 어려운 속성, 그리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육체적 현존과 세계 의 물리적 풍요를 근거로 들어 반(反)기술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 가 있다. 깁슨이 『뉴로맨서』에서 사이버 에로티시즘을 극대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이 온들(Zionites)’이라는 인간 공동체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를 받아들이지 않고 땅의 기원과 인간 심장의 생명력과 음악의 환희를 굳게 지키는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그렸던 예에서 보듯 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사이버스페이스의 유토피아적 해방이냐, 아니 면 그런 온라인 중심의 현실이 유발하는 인간의 억압과 삶의 황폐화냐가 아니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진짜 문제는 그 같은 이분법적 논리를 초과한 종류의 것이다. 아니, 그렇게 는 문제의 기초를 파악할 수도 없으며 해결은 더더욱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문제는 가상현실의 지각경험 vs. 육체, 기술 vs. 인간, 가상현실 vs. 현실, 기술을 통한 해방 vs. 기술로 인한 종속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두 대립 항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현실이다. 이를테면 가상이며 현실인 동시에 현실이며 가상 인 현실이다. 또 기술화된 인간인 동시에 인간화된 기술이며, 해방과 동시에 종속된 현존인 것이다. 2016년 대한민국의 온라인 공간을 보자. 아니 앞선 우리의 논의를 다시 새기며 말해보 자. 온라인 현실이 오프라인 현실을 좌지우지하는 메커니즘에서 온라인은 대체 무엇이며, 거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곳은 이제 초기 온라인의 순진성을 벗어던진 포스 트 온라인(post-online) 공간으로서 마녀사냥의 활개지, 극단적 분열과 이분법적 대립의 온 상, 여론조작 및 선전선동의 헤드쿼터, 불법적 인민재판과 쾌락적 폭력의 전시장이다. 물론 포스트 온라인이 이 같은 면모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온라인 공 간은 다원성과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는 공론장,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동시에 발현 될 수 있는 수평적 공간, 이질적이고 불균질한 것들의 관계망으로서 전면적이고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같은 장이자 네트워크로서 현재의 사이버스페이스는 초기 장밋빛 미래의 전망이 현재 일상의 리얼리티로 이행해오는 동안 크고 심각한 변모를 겪은 결과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포스트 온라인의 양태는 그런 과정들이 누 적되고 중층 결정돼 나타나는 객관적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 공 간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기입되는 인간들의 경험 및 정신구조, 집단의 행동양태 및 반응 조건이 오늘의 포스트 온라인을 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포스트 온라인 은 현실과 완전히 밀착되고 완벽하게 연동하는 속성 및 기질을 갖게 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지금 여기 온라인 공간은 현실공간이 가진 문제성, 부정성, 파괴성, 폭력성, 불의와 동 일하고 심지어 그 성질들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 증강, 확장, 심화하는 곳이 되었다. 짐 모리슨은 1969년, 아마도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 동안 비극의 무대 앞에서 미친 듯이 취하고 춤췄던 서구의 아르카익 시대를 떠올리며, 인간이 블랙박스/영화관에 들어앉아 영사 기의 빛이 명멸하는 스크린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자기 시대를 시니컬하게 노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채 안 된 시점의 현대를 사는 우리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한 적이 있듯 “부정적 세계화에 추동되어 이상하게 변해버린 사회의 ‘개방성’”11) 덕분에 넘치 는 불의, 통제할 길 없는 폭력, 끝낼 수 없는 공포, 판단 불가한 혼종의 갈등을 누구랄 것도 없이 양산해 내고 있다. 영화관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 한꺼번에 들어앉았으되 각자 고립될 11) Zigmunt Bauman, 함규진 역, 『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2014, p. 162. - 7 - 수 있었던 두 세대 전과는 또 다르게,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느 곳으로든 아무 때나 연결될 수 있지만 결국 찐득하고 무거운 포스트 온라인에 붙들린 포스트 휴먼들로 말이다. 끝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