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

in #stimcity1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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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람들의 거짓말이 거센 바람을 타고 하늘로 흩어져갔다. 단 한 사람만이 얼어붙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암스테르담 운하의 얼어붙은 냉기를 감당하고 있었다.



한스의 노래가 이어지는 내내 그녀는 한 순간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노래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녀는 떠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왔다. 아마도 그는 배신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상실과 이별은 그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해. 사랑은 자신의 길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야. 사랑은 자신의 길을 외면한 채 상대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야.'



그녀는 그가 잠든 사이 떠나왔다. 편지도 메모도 아무런 것도 남겨놓지 않고 떠나왔다. 그는 잠에서 깨면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혼돈에 휩싸일 거고, 매우 오랜 시간 당황하고 방황할 것이다. 그녀의 거취를 찾아.



실종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자신의 행적을 쫓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 그리고 모두들 의문에 휩싸였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점점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만을 제외하고.



'그는 아무 잘못이 없어. 선택은 내가 했으니까. 떠나는 선택까지도.'



그녀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물론 만나야 할 때와 영원을 약속할 때도 그리고 홀로 남겨질 때와 홀로 떠나야 할 때도. 마법사는 그녀에게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와의 미래를 약속한 것도, 자신의 길을 거부할 수 없는 것도 모두 그녀의 운명이라고 마법사는 말했다. 그리고 운명을 거부하는 선택조차 그녀에게 주어져 있다고도 말했다. 어떤 운명을 거부할지는 그녀에게 달려 있었다.



그녀는 곁에서 잠든 그를 내려다보며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음을 직관할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랑이 점점 희미해질 때에서야 잊고 있던 나의 운명을,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사라지는 사랑을 핑계로 삼을 수는 없어. 그를 나쁜 놈으로 만든 뒤에 그 반동으로 인생을 전환할 수는 없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려면 가장 사랑할 때, 모든 짐을 안고 떠날 수 있어야 해.'



마법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가고 뒤로 가야 하는 운명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만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운명이 있고 떠나기 위해 만나야 하는 운명이 있다고. 어떤 이들은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상반되는 선택을 자신 안에서 통합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고. 그들은 기꺼이 비난을 감수하고 손가락질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의 몫을 타인에게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려서 그녀는 휴대폰의 모든 정보를 초기화했다. 그리고 여기, 암스테르담 운하에 던져 버렸다. 얼어붙은 운하의 얼음 밑으로 그에 대한 모든 연결이 사라져 버렸다. 얼어붙은 그것은 봄이 오기 전까지 다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광장에선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얼어붙고 있는데 그 누군가의 노래만큼은 뜨겁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아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그에게 돌아가는 길이니까.'



그녀는 선택을 했었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의 길을 놓고, 떠나기 위해 만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만나기 위해 떠나야 하는 과업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법사였다. 지금 막 파리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한 마법사는 유리창이 박살 난 렌터카 문을 열며 어서 타라고 말했다.



"자, 이제 그에게 갑시다.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걸어가면 그에게 갈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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