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전초기지
해리 전초기지(영어: Outpost Harry)는 6.25 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한반도의 작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외딴 전초기지였다. 이 지역은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었으며, 휴전선 인근의 김화군과 철원군을 감제할 수 있는 고지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측 사료에는 381동북방 무명고지(중국어: 381东北无名高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 한국 원정군 병사들은 그리스 신화의 저승의 신 하데스의 이름을 따 하데스 기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투
[편집]1953년 6월 10일 21시 30분, 중국 인민지원군 제221사단의 6연대와 5연대의 두 개 소대는 120문의 포병 지원[1]을 받아 해리 전초기지를 방어하는 미군 15연대 K중대에 공격을 개시하였다.[2] 10분 후, 측면을 우회한 한 소대가 미군 진지를 돌파하였다. 22시, 정면으로 공격한 인민지원군이 진지를 돌파하였다. 전투 시작 50분 후, 인민지원군이 진지를 장악하였다.
다음 날 3시 20분, 미군은 E중대와 C중대, 그리고 중전차 중대의 한 소대를 투입하여 반격을 개시하였고, 진지를 탈환하였다.[2] 인민지원군은 이어서 1연대와 4연대를 동원하여 다시 공격을 감행하고 진지를 재탈환하였다. 미군은 B중대를 추가로 투입하였다.[2] 이후 양측은 치열하게 교전하였고, 진지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3일, 221단의 8, 9연대의 각 일부 6개 소대가 다시 고지를 점령하였으나 15일 최종적으로 철수하였다. 미군 3사단은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30여 대의 차량으로 증원 병력을 수송하였으나, 인민지원군의 로켓포병의 공격을 받았다. 16일, 미군은 진지의 방어를 그리스 대대에 인계하였다.[1] 6월 18일 아침, 중인민지원군(PVA)은 자정 무렵에 돌아와 자신들의 포병과 박격포 사격을 뚫고 북동쪽과 북서쪽에서 해리 전초기지를 공격하였다. 인민지원군은 격퇴되어 철수하였으나, 여전히 그 지역에 머물렀다.[3]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陆军第二十四集团军军史编写组,1986,《中国人民解放军陆军第二十四集团军军史》,北京
- ↑ 가 나 다 Markley, Martin (2014), The Battle of the Outposts Tuscola, IL: Korean War Educator
- ↑ George Pagomenos Archived 2015년 9월 24일 - 웨이백 머신 URL retrieved December 17,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