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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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
자명 | 이응 |
훈몽자회 | 異凝 (원래는 伊. 異凝은 옛이응) |
자원 | 목구멍의 모양 (목구멍소리) |
종류 | 닿소리 |
획수 | 1 |
로마자 표기 | |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 ng(종성) |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 ng(종성) |
발음 | |
어두 | 무음 |
어중 | 무음 |
어말 | 연구개 비음[ ŋ ] |
이음 | 어두·어중 구개음화[ j ] 연음된 종성의 구개음화 [ ɲ ] |
획순 | |
현대 한국어에서 초성으로 쓰이는 ㅇ은 초성 자리를 채우기만 해 주고 소릿값은 없으며,[1] 종성으로 쓰이는 ㅇ의 소릿값은 연구개 비음[ŋ]이다. ㅇ 뒤에 ㅑ, ㅕ, ㅛ, ㅠ, ㅖ, ㅒ로 시작하면 경구개 접근음으로, ㅘ, ㅝ, ㅞ, ㅙ로 시작하면 양순 연구개 접근음으로 소리난다.
역사
[편집]《훈민정음》(1446)에서 목구멍을 본따서 만든 글자로 처음 등장했다. ㅇ을 기본 모양으로 하여 ㆁ(옛이응) · ㆆ(여린히읗) · ㅎ 등의 모양을 만들었으며, ㅸ 등의 합자에도 쓰였다.
ㅇ은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로는 불청불탁의 목구멍소리로 분류되어 있고, 제자해에는 ‘옛이응 ㆁ의 소리가 ㅇ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다. ("唯牙之ㆁ,[중략]其聲與ㅇ相似") 이에 종래의 연구에서는 현대 한국어와는 달리 15세기 한국어에서는 ㅇ이 첫소리에 올 때 음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릿값은 성문 반찰음([ɦ])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자음 /ㄹ/ · /ㅿ/와 반모음 /j/의 뒤에 나타났다.[2] 그러나 2020년대 연구에서는 15세기 한국어에서 첫소리 ㅇ의 소릿값은 현대 한국어와 같이 없다고 본다.[3]
ㅇ받침은 훈민정음에는 종성이 없는 한자음에 채워넣기 위한 글자였고, 지금의 ㅇ받침에 해당하는 발음은 ㆁ(옛이응)받침으로 표기했다. 예를 들어 ‘솅조ᇰ’(世宗)의 첫글자는 ㅇ받침이므로 /셰/로 읽고 둘쨋글자는 옛이응 받침이므로 /종/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월인천강지곡》(1447) 등에서 받침이 없는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채워넣기 위한 ㅇ받침의 쓸모가 사라졌다. 이후 /ŋ/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ㅇ받침과 ㆁ받침이 혼용되다가 17세기가 되어 ㅇ받침으로 합쳐졌다.
《훈몽자회》(1527)에서는 ㆁ의 발음 예시로 ‘ᅌᅵ으ᇰ(異凝)’을, ㅇ의 예시로 ‘이(伊)’를 들었다.[4] 이것이 글자의 이름으로 굳어졌는데, 17세기에 ㆁ이 쓰이지 않게 되면서 ㅇ의 이름이 ‘이응’이 되었다. 또한 훈몽자회에서는 ㅅ 다음 순서에 ㆁ이 있었는데, ㆁ의 자리를 ㅇ이 차지하면서 ㅅ 다음에 ㅇ이 오게 됐다.
코드값
[편집]종류 | 글자 | 유니코드 | HTM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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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호환 자모 | ㅇ | U+3147 |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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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자모 영역 |
첫소리 | ᄋᅠ | U+110B | ᄋ
|
끝소리 | ᅟᅠᆼ | U+11BC | ᆼ
| |
한양 사용자 정의 영역 |
첫소리 | | U+F7D9 | 
|
끝소리 | | U+F86B | 
| |
반각 | ᄋ | U+FFB7 | 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