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산드로 마촐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Choboty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11월 22일 (화) 11:18 판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세리에 A의 축구 선수)
알레산드로 마촐라
개인 정보
본명 Alessandro Mazzola
출생일 1942년 11월 8일(1942-11-08)(82세)
출생지 이탈리아의 기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
179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 공격수
청소년 구단 기록
트레빌리에세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60-1978 인테르나치오날레 417 (116)
국가대표팀 기록
1963-1974 이탈리아 070 (22)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알레산드로 마촐라(이탈리아어: Alessandro Mazzola, 1942년 11월 8일 ~ )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다. 현재 RAI의 축구 분석가이자 해설자를 맡고 있다. 그는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사망한 발렌티노 마촐라의 아들이다.마촐라는 평생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만 뛰었으며 '라 그란데 인테르' 시절을 이끈 인물 중 하나이다. 마촐라는 그의 패스 범위나 시야, 볼 컨트롤을 돕는 창의적인 본능으로 인사이드 라이트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또한 마촐라는 많은 골을 넣는 스코어러이기도 하다.

그는 오직 인테르에서만 17시즌을 뛴 원 클럽 맨이다.

어린 시절

마촐라는 그의 아버지가 베네치아 AC에서 토리노 FC로 이적했을 때인 1942년에 태어났다. 이후 6년 뒤에 토리노 회장의 이름을 딴 동생 페루치오 마촐라가 태어났다. 마촐라의 부모는 1946년에 이혼했으며 마촐라의 양육권은 그의 어머니가 가졌다. 마촐라가 6살 때 그의 아버지는 죽었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산드로 마촐라와 그의 동생 페루치오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계약했다. 마촐라는 그의 선수 경력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냈으며 417경기에서 116골을 기록했다. 그는 1961년 6월 10일, 인테르의 라이벌인 유벤투스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그 데뷔전에서 팀이 9-1로 처참하게 지면서 마촐라는 쓴 맛을 맞봐야 했다. 그가 인테르에서 데뷔하기 1년전인 1960년, 엘레니오 에레라가 인테르의 감독으로 FC 바르셀로나에서 넘어왔다. 에레라는 그의 새로운 팀의 주전으로 1년 뒤 바르샤에서 데리고 온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를 중원사령관으로 배치했고, 타르키시오 부르니치자친토 파케티를 풀백으로 두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데리고 온 자이르 다 코스타를 오른쪽 윙어로, 마리오 코르소를 왼쪽 미드필더로 배치시켰고, 아르만도 피키를 스위퍼로 두었다. 그리고 마촐라는 이 팀의 오른쪽 공격수에 낙점되었다. 마촐라는 인테르의 일원으로 유럽 정상에 두 번이나 오르며 라 그란데 인테르 시절을 이끌었다. 카테나치오로 알려진 수비 전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마촐라는 유러피언컵 1963-64 결승 레알 마드리드 CF전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인테르의 도시 라이벌인 AC 밀란이 전 시즌을 우승한 이후 또다시 이탈리아 클럽이 유럽 최고임을 증명하였다. 다음 시즌인유러피언컵 1964-65에서도 SL 벤피카를 꺾으며 마촐라의 팀 인테르는 연속하여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유러피언컵 1966-67에선 셀틱 FC에게 패배하며 인테르는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지만, 마촐라는 그 경기에서도 1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마촐라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70경기 22골을 기록했다. 그는 1963년 5월 12일 브라질전에서 데뷔했다.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그는 이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 데뷔 경기에서 데뷔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또한 마촐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해 1966년, 1970년, 197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마촐라의 국가대표팀 경력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UEFA 유로 1968로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서 열린 이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2년 뒤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감독 페루치오 발카레치는 마촐라가 또 한 명의 스타 선수인 밀란의 잔니 리베라와 공존하지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발카레치는 '스타페타'(이탈리아어: staffetta, 교대)라고 이름붙인 전술을 사용하여 두 선수를 공존시키는데 성공했다. 마촐라가 전반전을 뛰고 난 뒤 하프 타임에 리베라가 교체되어 들어오는 방법이었다. 32년 만에 올라온 결승에서 이탈리아는 펠레의 브라질과 맞붙었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의 수비 축구와 브라질의 공격 축구가 맞붙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기 당일엔 발카레치는 스타페타 방식을 버리고 마촐라가 그 경기를 다 소화하게 했다. 8분 정도를 남기며 리베라가 교체로 들어와 마촐라와 리베라가 최초로 같이 뛰었으나, 팀은 1-4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4년 뒤의 월드컵에서 발카레치는 둘을 같이 뛰게 하였으나 이탈리아의 선수들은 너무 늙었기 때문에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며 일찍 짐을 쌀 수 밖에 없었다.

수상

개인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