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Critique 02

(90쪽) 초루(2023)

(p. 90) Choru (2023)

“사실 조 선생의 다른 건물을 보고 오설록의 차분한 건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100% 확신은 못 했죠.” ▼2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말이다. 이런 생각이 비단 그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비평가, 동료 건축가들도 여기에 대부분 동의했을지 (또는 여전히 할지) 모른다. 생각의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첫인상이 강렬할수록 더욱 그렇다. 딸기테마파크(2006), 부티크모나코(2004) 등 이전 세대 건축가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작업의 파격성은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에 대한 인상을 지배해왔다. 게다가 OMA가 세계 건축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시기를 경험한 그의 이력은 (이후 꽤 많은 한국 건축가들이 OMA의 문지방을 넘나들었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렘 콜하스의 그늘 아래에서 매스스터디스의 작업을 해석하게 했다.

2017년 「건축평단」에 기고한 글에서 임기택(부경대학교 교수)은 조민석을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기에 “욕망과 니즈에 ‘솔직’”한 ‘창조적 파괴자’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2012년 이후 달라진 매스스터디스의 작업을 ‘보수화’의 징후로 읽어내면서 그가 계속 ‘탈주’하고 ‘젊은 레지스탕스’나 ‘저항의 노마드’로 남기를 희망했다.▼3 비평가 송종렬은 “그의 작품은 도시적 현실에 대한 엄청난 몰입과 그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하며, “‘거울 앞에 선’ 사춘기 소년 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확실한’ 열정이 엄청난 자본의 힘에 어떻게 저항해나갈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4 비평가들은 대체로 매스스터디스의 작업을 대도시의 복잡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면서도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다른 틈새,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이해해왔다. 거칠게 말하자면, 렘 콜하스의 『정신착란증의 뉴욕』이나 『정크스페이스』 같은 텍스트의 틀로 매스스터디스를 조명한 것이다.

물론 위의 해석에는 타당한 면이 있다. 밀집과 혼란이라면 뉴욕 못지않은 서울에서 긍정과 부정의 절묘한 변증법적 줄타기를 해온 이가 매스스터디스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매스스터디스 작업 가운데 상당수를 놓치게 만든다. 이질적인 외부 변수나 복잡한 프로그램이 적은 프로젝트는 비평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쉽다. 이번 「SPACE(공간)」 프레임에서 소개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들, 티스톤(2012),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2019), 티테라스(2023), 오설록농장 티팩토리(2023), 초루(2023) 등이 그 예다.

티스톤은 아모레퍼시픽이 제주 서귀포시 서광리에서 운영하는 다원 내 다도 체험 공간이다. 제주 고유의 자연인 곶자왈 식생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맥락이 없는 대지 조건, 다도 실습이라는 정적인 프로그램은 평면이나 형태를 도출해낼 외부 요인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조민석은 추사의 벼루나 세한도가 언급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검은색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다실은 유배지가 강요하는 고단함이나 소박함, 이 검박함이 강요하는 정신의 단련과 거리가 멀다. 티스톤은 재료나 구축 모두 대단히 풍요로운 건물이다. 건물 전체는 양쪽으로 뻗은 캔틸레버로 지탱되지만 이 흔치 않은 크기의 캔틸레버는 감추어져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리가 무거운 돌을 지탱하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상부의 검은 돌이 덩어리가 아니라 판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재료가 만나는 부분에서 디테일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강한 물성을 지닌 재료, 중력의 흐름을 시각화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하면서도 이를 과시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구축의 흐름을 감추는 티스톤은 텍토닉적이면서 비텍토닉적이다. 날이 갈수록 우거질 자연 안에서 티스톤은 존재감을 감춘다.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지에서 티스톤은 교묘한 고요함을 확보한다. 드러냄과 감춤의 놀이가 전개되는 티스톤에는 투명성만큼이나 불투명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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