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씨(河東鄭氏)는 경상남도 하동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관향이다.

하동 정씨
河東鄭氏
나라한국
관향경상남도 하동군
시조정도정(鄭道正), 정응(鄭膺), 정손위(鄭遜位)
집성촌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광덕리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도안리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고죽리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광전리
평안북도 철산군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 상백리
황해도 안악군
주요 인물정희, 정인지, 정초, 정현조, 정숭조, 정여창, 정세호, 정운, 정대민, 정봉수, 정홍덕, 정주현, 정충신, 정상기, 정성태, 정주영, 정인영, 정세영, 정상영, 정몽필,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원, 정몽규, 정갑주, 정동채, 정명훈, 정두언, 하동부대부인
인구(2015년)187,152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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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정씨는 본관은 같지만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 밀직공 국룡파(密直公 國龍派) :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고, 10세 정인지(鄭麟趾), 12세 정여창(鄭汝昌)으로 이어져 왔다.
  • 정승공 응파(政丞公 膺派) :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고 6세 정희(鄭熙), 7세 정초(鄭招), 8세 정수충(鄭守忠), 9세 정세(鄭稅)로 이어져왔다.
  • 지부사공 손위파(知部事公 遜位派) : 시조 정손위(鄭遜位)는 고려 숙종 때부터 명종 등 5왕조에 걸쳐 벼슬을 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 지례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膺揚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하동백에 봉해졌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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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鄭熙) : 號 默隱, 포은 정몽주의 제자, 고려 우왕 진사시, 동년 문과 급제고려 진현관 직제학, 두문동 72현중 9정신, 광주 화담사, 장성 경현사, 화순 예산사 배향하였다.
  • 정초(鄭招, ? ~ 1434년 ) :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 중시에 합격하여 이조판서 공조판서, 함길도관찰사, 예문관 집현전 대제학을 지냈고 경술년 농사직설 찬진, 역법, 회례문무악장, 삼강행실도 . 시호는 문경(文景), 광주 화담사, 괴산 문경사 배향하였다.
  • 정인지(鄭麟趾, 1396년 ~ 1478년) :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주도한 계유정변의 성공과 함께 좌의정에 발탁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 정수충(鄭守忠, 1401년 ~ 1469년 ) : 博通經史로 영응대군 사부, 1450년(문종 1)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 사예, 하원군, 조선 최초의 14인의 봉조하중 한 분이며 의정부 좌찬성을지냈다. 시호는 문절(文節) 황해도 금천 영당, 청주 옥산 문절영당, 영동 청절사, 광주 화담사, 화순 예산사 배향하였다.
  • 정현조(鄭顯祖, 1440년 ~ 1504년) : 정인지의 아들. 1455년(세조 1)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하성위(河城尉)에 봉해졌다. 1458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68년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책록되고 수록대부 하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책록되고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시호는 편정(褊玎)이다.
  • 정여창(鄭汝昌, 1450년 ~ 1504년) : 145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495년(연산군 1) 안음현감(安陰縣監)에 임명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종성(鍾城)으로 유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 시호는 문헌(文獻).
  • 정적(鄭積, 1447년 ~): 성종 을미 친시 급제, 첨정, 사헌부 장령을 역임하였다.
  • 정세(鄭稅, 1450년 ~): 문절공의 8남으로 성종 을유년에 팔공신 회맹제 참여, 진위장군 충순위 호군 배명,눌재 박상의 婦翁.
  • 정길(鄭佶, 1566년 ~): 號 蘭谷, 명종 병오중 생원시, 죽천 박광전 수제자, 임란 창의, 산양 오현, 유고및 난곡일기, 전남 보성 출생하였다.
  • 정회(鄭繪, 1538년 ~ ): 정유재란시 부옹 병사 선거이를 따라 창의후 보성 정자천에서 순절, 광해군 증 참의 고종 증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 정겸(鄭謙, 1619년 ~ ): 號 松菴, 인조때 사마시, 전남 화순 출생하였다.
  • 정운(鄭運, 1543년 ~ 1592년) :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부산포해전에서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정오도(鄭吾道, 1647년 ~ ): 號 藥圃, 우암 송시열 문인, 숙묘 만언소, 인현왕후 복위및 우율 양현 복설 주청, 철종 증 이조판서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약포집, 남공철 찬행장,광주 화담사 배향하였다.
  • 정덕필(鄭德필, 1725년 ~ ): 號 醉隱, 병자 사마 일등, 임오 문과 급제, 성균 직강, 이조 좌랑, 사헌부 장령, 경기도사, 돈녕부 도정, 취은 유고 남주헌 찬행장.
  • 정봉수(鄭鳳壽, 1572년 ~ 1645년) :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1634년 전라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부총관 겸 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무(襄武)
  • 정상기(鄭相基, 1678년 ~ 1752년) : 영조 때 지리학자로 임진왜란 때 공헌하였다.
  • 범현대가 정주영(鄭周永, 1915년 ~ 2001년) : 현대그룹 회장, 제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현대그룹 창업주로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과 경제를 이끌었으며, 국가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아들 정몽구를 이어, 손자 정의선 등에 이어 대대로 자동차 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범현대家로 불리는 거대 유력 재벌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아들 정몽구 회장, 정몽헌 회장, 정몽준 회장, 정의선 회장 등 자손과 친인척들 대부분이 대기업 집단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정몽준 회장은 김동조 제16대 외무부 장관의 영애와 결혼하였으며, 정의선 회장의 영애 정진희는 김덕중 제39대 교육부 장관의 영애와 결혼하였다.)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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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직공파 (도정계, 정석숭을 1세로 한다)[1]
  • 지예부사공파 (손위계)
  • 좌정승공파 (응계)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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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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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동정씨대종친회 항렬표”. 2013년 12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1월 2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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