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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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회의론자들은 [[스토아 학파|스토아주의자]]들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였다. 회의론자에게 논증의 논리적 방식은 그 다음의 명제에 의지하지 않고는 참이나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명제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옹호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후퇴 논증]](regress argument)이었으며, 이것으로 모든 명제는 그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명제에 의존하여야 한다. 회의주의자들은 두 명제는 순환 논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회의론자들에게 이러한 논리는 진리에 관해서는 불충분한 방법이며, 그것이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에게 진리는 필연적으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회의주의는 진리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판받았으나 사실 [[논리학|논리학자]]들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비판적 학파로 보인다.
 
근대에 이르러 회의주의를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대표적인 [[합리론]]자 [[르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제1철학에 관한 성찰|성찰]]에서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논증을 펼쳤다. 데카르트는 후에 이 진리를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정식화하였는데, 그가 이 진리를 찾아낸 방법은 [[르네 데카르트#데카르트의 방법|꿈과 악마]]로부터 유래한 이른바 '[[방법적 회의]]'였다. 한편 [[역사가]]들은 대개 [[데이비드 흄]]의 철학을 회의주의의 연장으로 보며, 흄은 [[인과론]]을 회의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흄의 철학은 자신의 독자적인 비판 철학을 완성한 [[이마누엘 칸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대에 철학적 회의주의를 전개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은 [[버트런드 러셀]] 등이 있다.
 
== [[종교적 회의주의]]·[[과학적 회의주의]] ==